경남 함안군의회 5분자유발언
이병유 의원 5분자유발언
이병유 의원입니다. 최근 계속된 봄비로 수박, 참외 등 비닐하우스 재배농가에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들과 어려움을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군이 배출한 한국 현대 문학사의 거목 석재 조연현 선생님의 문학관 건립 및 문학상 제정 당위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금 세계화 시대를 맞아 문화가 가장 큰 경쟁력이라 하였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후손들은 큰 발자취를 남기고 가신 훌륭하고 귀감이 되는 함안인을 찾아 그분들의 업적을 찾아내고 또한 보존하는 것이 지역의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며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1920년 7월 26일 함안군 함안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해방 후 1946년 예술부락 창간을 시작으로 문학과 사상, 일상의 사상, 조연현 문학전집 등 주옥같은 많은 저서와 1947년 민주·민중일보 기자를 거쳐 문예사 편집장 등 언론에 종사하였으며 61년을 전후하여 서울대 등에 출강을 시작으로 동국대 전임교수와 한양대 문과대학장을 역임하셨습니다. 1963년 문화포장, 1965년 대한민국 예술상, 1966년 예술원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54년 예술원 초대 회원으로 회원 위촉을 시작으로 국전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81년 11월 24일 61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조연현 평전을 쓴 문학박사 박종서 씨는 “석재 조연현은 해방 전후 70년대까지 문단의 중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82년 한국문인협회는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연현 문학상을 제정하여 현재까지 매년 시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남문협 회장을 역임한 정목일 씨는 함안출신의 대문인 석재 조연현 선생님의 문화적 업적 재조명이 다른 고장의 문인들에 견주어 볼 때 뒤늦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석재문화관 문학비 건립, 석재문학상, 백일장 제정 등으로 석재 문학 선양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지난 2001년 함안문인협회에서 주관하여 석재 조연현 업적 재조명 세미나가 있었습니다마는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이순일 부회장이 선생님의 친일행적 제기가 있어 그걸 계기로 해서 기념관 사업이 무산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후배 문인들과 가족이 논란이 제기되는 선양사업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친일관련 문제를 사료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일련의 친일비평과 몇 편의 친일관계 글을 남겼다고 친일인명사전에서 이야기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고향에서 면 직원을 했다고 조연현 평전에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선생님의 생애에 작은 흠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큰 업적에 비하면 그리 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 의원은 의견을 개진하는 바입니다. 지금도 늦은 감이 있습니다마는 선생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선양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주실 것을 당부 드리면서 끝으로 “예술은 인생의 빵이 아니지만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포도주이다.”라고 독일의 세계작가 리히터의 어록을 소개하면서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