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의회 5분자유발언
박천호 의원 5분자유발언
존경하는 오세웅 의장님을 비롯한 선배·동료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주산·동진·백산의 박천호 의원입니다. 이렇게 귀한 자리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전 우리 부안군은 조선 태종 16년인 1416년 부령과 보안현을 합하고 두 고을 이름의 앞뒤 한 글자씩을 따 부안현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600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치렀습니다. 군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새로운 미래 부안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던 부안 정명 600주년 기념행사는 전 군민적 호응 속에 부안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 아주 뜻 깊은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본 의원은 이 행사를 바라보며 한가지의 아쉬움과 바램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정명 600주년 행사를 앞두고 집행부는 올해 초부터 군민의 의식을 환기시키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478년 후의 일이며 아직도 주위에 그날의 흔적과 유족들이 산재해 있는 동학농민혁명 백산대회에 대해서는 우리 부안 군민의 의식적 비중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는 게 마음 저리는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모 언론인 중 한분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중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이 백산대회라고 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백산이 비록 우리 부안의 옆 고장이었던 고부군에 속해 있었다하더라도 행정구역을 개편했던 때가 1914년이었기 때문에 벌써 고부의 백산대회가 아닌 부안의 백산대회가 된지 100년도 더 지났다는 말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미 100년도 더 지난 부안의 역사가 아직도 많은 군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부안의 본역사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뜻 입니다.
본의원은 부안군의회에 등원을 시작하기 전부터 역대 민선 군수님과 또 많은 군민께 동학혁명 백산봉기 기념대회를 백산면에서만 치르는 행사가 아닌 부안군 전체의 행사로 승격하고 이를 통해 본격적인 선양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습니다. 물론 민선 6기 김종규 군수께서 지난해 우리 군의 대표축제인 마실축제의 주된 테마로 동학농민혁명 백산대회를 선정해 축제를 치러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그간 우리 부안에서 조차 백산대회에 대한 연구나 선양사업의 실적이 적어 이를 마실축제와 제대로 결합하는 데에는 적잖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의원이 다시 한 번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미 100여년 전에 일어났던 우리 부안의 역사인 동학농민혁명 백산대회의 선양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명 600주년에 버금가는 공을 들여 주십시오. 백산면과 동학혁명 백산봉기 기념사업회만의 행사가 아닌 부안 군민이 함께 큰 관심과 애정, 자긍심을 갖고 치르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공을 들여 주십시오.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 제정과 관련 12년간 소모적 논쟁을 벌인 끝에 최근 국가기념일 학계 자문단은 3차 회의에서 고부 봉기일 2월 14일로 무장 기포일은 4월 25일 전주 화약일 6월 11일 우금치 전투일 12월 5일을 가지고 투표결과 전주 화약일로 제정하기로 잠정 결정하였으나 정읍시와 고창군이 반발하면서 각각 법안 청원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학자들이 혁명 속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백산대회를 꼽으면서도 기념일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백산대회는 전봉준장군, 손화중장군 김개남 장군이 합세하여 총사령관에 전봉준, 참모장에 손화중, 사령관에 김개남으로 정식 군대 명령체계를 갖추고 현재의 전라남북도와 제주도에서까지 농민군이 모여 연합을 이뤘고 완성된 농민군의 진영이 갖춰진 사건입니다.
그 수가 당시로서는 큰 병력이었던 8,000에 달했고 백산대회를 통해 비로소 혁명의 목적이 드러난 격문과 4대 명의, 12개조 기율 등이 제정돼 혁명군으로서의 진용을 갖추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백산대회를 고창의 무장기포와 견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혁명이 무엇을 추구하는지의 의미를 완성한 것은 무장기포가 아닌 백산대회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기치는 반봉건, 반외세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 하는 말처럼 무장기포의 역사적 가치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포고문에는 탐관오리의 횡포에 맞선 반봉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어디에도 반외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백산대회에서 발표된 격문에 와서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황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라며 비로소 반외세에 대한 의미가 더해져 혁명의 명분과 당위성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산대회는 우리 부안에서 조차 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디에서도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실정입니다.
본의원은 그 원인 중 하나를 지난 2004년 9월 11일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일부 학자들이 모여 개최했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위한 제1차 토론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1명과 현재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해 자주 거론되고 있는 학자 7명이 모여 열었던 이 토론회에서 백산대회는 그야말로 단칼에 기념일후보에서 제외되는 참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근현대 민중운동, 변혁운동의 기점과 직결된다는 의미와 함께 발발 시작일과 공간적 상징성을 고려해 백산대회일을 기념일로 제안한다 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학자는 백산대회일로 기념일을 정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로는 본격적인 농민혁명으로 출발한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학자는 무장기포는 하나의 과정이다. 상징성을 갖는 가공의 날짜일 수 있다.
백산대회는 남북한이 공히 중요하게 여긴다 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명의 학자가 거듭 무장기포일을 주장하며 백산대회의 날짜를 문제 삼았고 이어 백산대회의 실체가 과연 의문이라면 무장기포 쪽으로 바꿀 수 있다고 의견이 제시되면서 백산대회는 기념일 후보에서 지금까지 12년이 넘도록 거론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의원님들께서도 잘 아시듯 지난 2014년 우리 부안의 주산면에서 지역의 선비가 썼던 홍재일기가 발견됐습니다.
홍재일기에서 백산대회일이 1894년 음력 3월26일로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김종규 군수님과 부안군 공직자 여러분! 학계가 인정하는 백산대회일이 음력 3월 26일로 밝혀졌는데도 왜 아직도 우리 부안군은 백산대회일을 국가기념일로 학계와 자문단에 주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재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국정농단사건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시작해 3.1독립만세운동으로, 4.19혁명으로,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국민들이 고난 속에서 이뤄왔던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이유로 전 국민이 일어서는 상황입니다. 그 시작점에 있는 위대한 혁명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부안의 동학농민 혁명 백산대회입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부안의 전 군민과 의회와 집행부가 함께 올바른 부안의 역사가 올바른 대한민국의 역사가 쓰여 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신 오세웅 의장님과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본의원의 5분 자유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