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의회 5분자유발언
허유인 의원 5분자유발언
ㆍ존경하는 28만 순천시민 여러분! 조곡동, 덕암동, 생목동, 연향동 지역구 출신 허유인 의원입니다. 먼저 본 의원에게 발언기회를 주신 김병권 의장님과 선배ㆍ동료 의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시민이 잘사는 도시, 시민이 행복한 도시 건설을 위해 매진하고 계시는 조충훈 시장님과 집행부 공직자 여러분의 노고에도 고맙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ㆍ본의원은 오늘 5분 발언을 통해서 순천시민의 노래를 처음 만든 작사가 허의령 시인을 알려드리고 동시에 시집발간, 시민의 상 수여 등을 통해서 순천을 빛낸 문인으로써의 그 분의 예술혼과 문학적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함을 호소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순천은 애향의 걸출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곳입니다. 순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 무진기행을 통해서 1960년대 당시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가 김승옥님, 그리고 지금도 많은 문학회인이 문학기행을 오는 오세암을 쓴 동화작가 故정채봉님을 비롯한 순천시청에서 오래 근무했던 故정조 선생님, 그리고 등단한 지 30년 만에 주편이라는 시집으로 요설과 잡설이 난무하는 시의 호수 속에서 진정 말을 사랑하는 법과 절제된 말이 가진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신 서정춘 시인 또 소리꾼 장사익의 ‘문열어라’ 라는 노래의 작사가로 유명한 허형만 시인 등 수 많은 문인들이 한국문단에 진출하여 순천의 이름을 빛내었고 지금도 빛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천시와 순천문학회는 순천만의 김승옥, 정채봉 문학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김승옥 문학상, 무진 백일장, 정채봉 문학상과 백일장을 제정ㆍ운영하여 그분들의 문학정신을 계승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또 순천고에서는 김승옥, 서정인 작가 문학비를 세워 후배 양성의 표본으로 삼고 있으며 삼산도서관에는 허영만 시인의 개인문고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순천을 빛낸 문인들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현창하는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려진 문인과는 달리 순천이 기한 공에 비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조명 받지 못한 예술가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분 중의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순천시민의 노래를 작사하신 작사가가 누군지 아십니까? 아마 대부분은 모르신다고 답하실 겁니다. 그리고 소수의 몇 분은 지금 우리 본회의장 뒤 방청석에서 이 5분 발언 듣고 계시는 양동식 시인을 기억 속에 떠올릴 것입니다. 그분들의 기억과 같이 순천시민의 노래를 작사한 분은 양동식 시인이 맞습니다. 그런데 양동식 시인이 작사한 시민의 노래는 승주군과 순천시가 통합하여 만든 통합순천시의 시민의 노래입니다. 그렇다면 통합 전 순천시의 시민의 노래를 작사한 분은 누구일까요. 이에 대해서 제가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혹자는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허의령 시인이 단독으로 작사했다는 말도 있고 어떤 분은 네 분의 순천문인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셨다는 여러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서 인터넷검색, 순천시 관련자료, 전문가, 순천시 관련 문인들에게 자료요청을 했으나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확실한 증가가 없습니다. 정말 그동안 안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옛말에 서재에 꽂힌 책은 책이 아니다. 독자에게 읽혀지는 책이 살아있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순천시 어딘가는 제가 찾고자 하는 통합 전 순천시민의 노래 악보라든지 이와 관련된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리나 데이터베이스화가 되어 있지 않아 지금의 저처럼 필요할 때 활용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료는 자료로써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는 순천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유ㆍ무형 자료에 대해서 가능한 시가 빨리 적극적으로 시가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즉시 시행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이 자료를 찾는데 제가 어제까지 5분 발언을 준비하면서 혹시 5분 발언시간에 틀린 사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늦도록 고민하다가 늦은 밤에 허의령 시인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물론 그동안 두 번에 걸쳐서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늦게 찾아가서 그런지 다행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처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감동을 주는 자료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잠시 본의원이 찍어온 사진자료를 보겠습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ㆍ인터넷 검색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던 허의령 시인의 모습입니다. 지금 들고 계신 액자가 그때 본인이 작사했던 시민의 노래입니다. 이것이 시민의 노래 원본입니다. 위에 작사자가 허의령 그리고 이 노래는 아마 두 차례에 걸쳐서 순천시가 공모를 했답니다. 그런데 마땅한 작품이 없어서, 훌륭한 작품은 상을 주고 채택을 안 하고 故정조 선생께서 의뢰를 하여 작사를 했다고 하고 참고적으로는 작곡가는 당시 순천고의 음악선생이었던 김유섭 작곡가님이 작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양동식 시인이 만든 통합 순천시민의 노래입니다. 저는 시민의 상 추천을 하려고 봤는데, 물론 통합시에서는 아직 시민의 상이 없습니다마는 벌써 1975년 그분의 문학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뜻에 의해서 당시 박시장님께서 이미 시민의 상을 수여를 했더라고요. 8회였습니다. 1975년 10월 15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정말로 갈구했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ㆍ이 사진 속의 자료나 허의령 시인을 만나고 온 저의 확실한 결론은 예전 인한동, 지금은 대대동에서 오이장사를 하면서 지내는 허의령 시인이 통합 전 순천시민의 노래 작사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보신 바와 같이 통합 전 순천시에서는 시민의 상까지 주면서 그분의 문학적인 업적을 칭송하고 기르고 있는 데에 비해서 통합 후 순천시에 대해서는 그분의 기한 공에 비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분이 허의령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년 85세, 저한테는 86세라고 했습니다. 농부 시인 허의령 님은 1961년 공병 중위로 근무하던 중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4.19혁명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4.19혁명으로 총상을 입은 젊은이들의 선혈 낭자한 모습으로 실려 온 것과 몇몇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 참담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 갖다놓은 베고니아 화분을 보면서 동승동 서울대 캠퍼스에 핀 베고니아 꽃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4월에 알아진 베고니아 꽃’이라는 시를 썼다고 합니다.
ㆍ포연에 서린 자욱 짖궂게도 아물지 않아 엘레지에 파묻힐 때 아니 태풍을 맞서고 나선 등불마냥 내 숨결이 낮아질 때 장안이 들끓어 하늘이 내려앉고 그래서는 안 될 얼굴끼리 불장난이 있을 때 말이다. 그날 밤 병원 문이 터져나가고 십대들의 꽃송이가 가닥가닥 찢긴 채 아직은 꺼져가는 체온을 걷어가며 곁에 와 나란히 자리를 마련하던 날에 말이다. 누가 놓았는지 모르지만 병실의 꽃 그것이 베고니아꽃이라고 하기에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손을 내밀이 씨종자 가리듯 유심히 보고 또 보고 했으니. 그 꽃이 사철 피는 베고니아꽃이라고 하기에 선혈같이 붉은 빛 간직타 못해 그냥 쏟아버리고 도려 핏빛을 아신 듯한 그 꽃이 말이다. 아기의 입술마냥 금붕어가 내뿜는 물거품마냥 피었다가 제 발 밑에 소롯이 고여가는 귀엽기만한 그 꽃이 말이다. 화분에 담긴 그 꽃이 베고니아라 하기에 마음 가다듬어 보고파지며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웠음은 4월에 알아진 때문이다.
ㆍ허의령 시인의 ‘4월에 알아진 베고니아꽃' 일부분입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ㆍ본의원이 낭독한 이 자작시를 사상계에 보내고 당시 최고의 시인 조지훈과 송욱이 심사를 하고 발행인 장준하 선생이 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 사진과 같은 사상계의 잡지에 실리면서 시인으로 등단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퇴원한 시인은 고향 순천으로 돌아와 농부가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시를 썼지만 2남 4녀를 키우며 살아가기 바빠 문단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써놓은 시를 정리하지 못해 그동안 시집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의령 시인의 문학적 재능을 아는 양동식, 장윤호, 노윤환 시인 등 지역의 많은 문인들이 허의령 시인을 기억하고 그의 재능과 예술혼이 꽃 피우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재조명 받을 수 있도록 순천문학회의 순천문학상 수상 대상자로 추천하려고 하였습니다.
ㆍ그러나 순천문학상을 수여받는 조건은 첫째, 순천출신이어야 할 것. 둘째, 생존 작가여야 할 것. 셋째, 작품집이 있어야 할 것. 이 세 가지인데 허의령 시인은 세 번째 조건인 작품집이 없어 순천문학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ㆍ존경하는 순천시민 여러분 그리고 특히 조충훈 시장 이하 공직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문화예술이 경제력과 함께 도시발전의 경쟁력으로 떠오르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문화예술이 가진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첫 번째, 문화예술은 역사 속에서 지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잇는 역사의 가교입니다. 두 번째, 지역의 인문학적 가치를 축적하고 결국은 경제적 가치 이상의 것을 산출하는 그 지역의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지역 내 모든 영역에서 창조적 활동에 자극을 줌으로써 동반성장을 가능케 하는 주요 요인입니다.
ㆍ그동안 우리는 국가나 도시경쟁력을 말할 때 자본이나 기술 그리고 인적자원으로 판단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도래한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세상은 창의의 토대위에 형성된 문화예술 자본을 빼고서는 도시경쟁력을 논할 수 없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충훈 시장님께서 누누이 이야기하시고 시민 모두가 꿈꾸는 대한민국 최고의 행복도시 그리고 대한민국을 넘어서 아시아 생태 스마트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로 도시의 품격을 높여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여야하며 이를 위한 실천과제중 하나로 생태와 문화가 융합하여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 행복의 향기가 가득한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실천과제 중 하나로 먼저 순천시민의 노래의 작사가로 순천을 빛낸 허의령 농부와 같은 이들의 업적을 발굴하고 재조명하여 길이 남겨야 하며 통합순천시에도 시민의 상이라도 드려 감사의 박수를 쳐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ㆍ특히 순천시민의 노래 원작자로써 우리 순천을 빛내고 공헌한 허의령 시인의 경우 그동안 쓰여졌지만 세상에 소개되지 못한 시들을 모아 시집발간 등 지난 업적을 찾아 재조명하여 허의령 시인이 살아계실 때 꼭 순천문학상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조충훈 시장님 이하 공직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업무협조를 기대하며 이상으로 저의 5분 발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좀 길었지만 끝까지 경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